변화를 두려워해선 더이상의 성장은 없습니다.
-Alex Ferguson-
11/12시즌을 앞두고 중동자본의 힘으로 2010년부터 시작된 거짓말같은 영입을 했던 만수르의 맨시티는
아게로와 나스리 클리쉬등을 추가로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고 맨시티는 초호화 군단을 완성시켰다.
그런 맨시티는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클럽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 맨시티와 처음으로 맞붙은 2011 커뮤니티실드
맨유는 맨시티에게 전반전에만 2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퍼거슨은 퍼디난드와 비디치를 빼고 에반스와 필존스를 투입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고
이후 맨유는 맨시티를 추격하며 동점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종료직전 루니가 걷어낸 볼을 콤파니가 수비실책하며 나니에게 찬스가 이어졌고
조하트를 제치며 득점,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여전히 강력한 퍼거슨의 맨유를 볼수있던 경기였지만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맨시티를 볼수있는 경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위기는 훨씬 더 빨리 찾아왔다
11/12시즌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첫번째 더비
맨유는 홈구장인 올드트래포드에서 6:1이란 믿을 수 없는 기록으로 패배했다.
우려했던 중원에서의 문제가 발생했고 은퇴한 스콜스의 공백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스콜스의 은퇴와 선수들의 부진,부상은 유나이티드의 위기로 이어졌다.
중원에서의 문제는 팀의붕괴로 이어졌고 맨유는 우승레이스에서 뒤쳐지고 있었다.
중원의 영입이 필요한 시기에 퍼거슨은 영입이 아닌 다른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스콜스의 복귀다.
하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퍼거슨의 선택은 맨유를 다시 우승레이스에 참가시켰다.
맨시티의 독주가 장기간 계속되던 때 맨유만이 포기하지 않고 맨시티에 대항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10경기 남은 28라운드에서 맨유는 1위를 탈환한다.
스콜스의 복귀가 1위탈환을 만들어냈지만 분명 장기적인 계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우승레이스 막바지에서 드러나게 된다.
사실상 우승을 결정짓는 5월1일 맨체스터 더비
퍼거슨은 시티를 상대로 루니만을 공격으로 배치하고 중원을 두텁게하는 전술을 준비했다.
이러한 중원압박과 역습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승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전반 막바지, 세트피스에서 시티에게 선제골을 내준 유나이티드는 후반 공격적인 교체로 득점을 노렸지만
결국 득점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홈에서의 6:1 굴욕을 갚아주지도 못했고 자력으로 우승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놓이고 만다.
그리고 리그 마지막경기 맨유는 1:0으로 승리를 기록하며 시티의 결과를 기다려야했다.
맨시티는 QPR과의 경기에서 후반 정규시간이 끝날때까지 2:1로 지고있었다.
무승부만 기록해도 맨유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91분 에딘제코의 헤딩골로 우승의 불씨를 살렸고
95분 아게로의 기적과같은 드리블 후 슈팅으로 버저비터를 기록하며 3:2로 승리
우승은 44년만에 맨체스터 시티에게로 돌아갔다.
스콜스를 복귀시키며 잉글랜드를 재패한 최고의 팀으로써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유나이티드 역시 무적은 아니었다.
그리고 유나이티드의 20번째 우승트로피는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12/13시즌 맨유는 여전히 스콜스의 대체자를 찾는것에 애를 먹었다.
중원을 맡길 핵심플레이어를 영입하기에는 선수들의 몸값이 너무 높았고
맨유 역시 자금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퍼거슨 역시 중원을 보강해야 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퍼거슨의 선택은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측면을 이용한 축구를 준비했다.
카가와 신지와 로빈 반페르시를 영입하며 중원에서의 플레이가 아닌
측면을 이용한 공격축구를 준비해 갔다.
그리고 퍼거슨의 선택은 다시 맨유의 성공으로 이어갔다.
하지만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공격만의 힘은 아니었다.
맨유의 중앙 미드필더인 마이클 캐릭이 맨유입단이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며 중원의 공백을 완벽히 메워줬기에 가능했다.
디펜딩 챔피언인 맨체스터 시티는 변함없는 전술과 약해진 동기부여 등으로 우승권에서 멀어져갔다.
우승레이스에 독보적으로 앞서갔던 맨유였지만 이 순간 퍼거슨은 구단에 자신의 은퇴를 얘기했다.
물론 은퇴를 생각할 시기였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은퇴소식이었다. 그 배경에는 가족사가 있었다.
퍼거슨의 아내 캐시는 바쁜 퍼거슨을 대신해 퍼거슨의 처형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랬지만
2012년 겨울 퍼거슨의 처형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떠나자 아내인 캐시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퍼거슨은 이제 가족들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때 은퇴를 결심했다.
구단입장에서는 너무나 난감한 상황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맨유를 이끌어줬던 퍼거슨의 은퇴는 맨유에게 있어 그 어떤순간부터 큰 변화였다.
그때부터 팀은 퍼거슨의 후계자를 찾는데에 집중했다.하지만 퍼거슨은 이미 점찍어둔 자신의 후계자가 있었다.
바로 에버튼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었다.
많은 감독들 중에서 왜 모예스였을까? 그것은 15년전인 1998년으로 돌아가면 알수있다.
1998년 퍼거슨은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모예스를 눈여겨봤다.
수석코치로 자신의 곁에 두고싶어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모예스의 운영방식과 행동,언행,정치적인 성향까지 자신과 비슷한 모예스를 자신의 후임후보로 올려뒀었다.
이후 모예스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에버튼에 부임 해 11년간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
팀을 중상위권팀으로 올려놓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성과가 모예스를 향한 퍼거슨의 더 확고한 믿음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퍼거슨은 자신의 은퇴를 준비해갔다.
그리고 자신의 은퇴에 대한 공식발표가 있기 전 락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퍼거슨의 은퇴에 모두가 침묵했고 퍼거슨은 그런 제자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2013년 5월 8일 퍼거슨의 은퇴를 공식발표하며 39년간의 감독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퍼거슨은 팀의 20번째 트로피와 함께 맨유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우연찮게 이번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맨유에서의 1500번째 경기가 되기도 했다.
37라운드 마지막 홈경기 퍼거슨은 은퇴연설을 마지막으로 그의 감독생활이 끝이난다.
이 일대기를 준비하면서 맨유의 역사와 퍼거슨의 등장이
팀과 잉글랜드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알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7년전 맨체스터는 거의 다 쓰러져가는 팀이었고자신만의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속에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던 모든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부담,압박이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네요.
은퇴한지 5년이나 지났음에도아직도 맨유하면 퍼거슨감독을 많이 얘기합니다.
그정도로 퍼거슨은 맨유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퍼거슨의 맨유는 없습니다.그렇기에 더더욱 퍼거슨을 찾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영광에 얽매인다면
그것만큼 그 자리에 안주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퍼거슨이 맨유에서 보여줬던 도전과 변화가 필요한 시간입니다.우리가 찾는것은 제2의 퍼거슨이 아닙니다.
그저 퍼거슨과 같이 팀을 사랑하고 팀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그런 감독이라면
새로운 맨유의 시대가 다시 오지않을까 저는 기대합니다.
퍼거슨 은퇴연설
맨유의 영웅 '명장' 알렉스 퍼거슨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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